'어버이날 노인의 날 만든 1등 공신 이돈희 씨'

-서울 하이뉴스에서 2011년 7월12일에 인터뷰

조영관 발행인 | 입력 : 2021/07/02 [07:34]

 

 

▲ 16세 때 아버지날, 21세 때 노인의 날을 만든 이돈희 대표 (64세)     ©월드레코드

  

노인의 날은 누가 만들었을까?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초대회장일까보건복지부장관일까? 다른 정부기관일까? 아니다. 사실 노인의 날은 20세를 갓 넘긴 대학생 청년이 만들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최근 한국사회에 논란이 된 '지하철 패륜남·패륜녀' 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지 말라는 노인에게 욕 세례를 퍼붓는 젊은 남성과 자신의 아이를 만졌다고 할머니 얼굴을 페트병으로 때린 사건으로 '동방예의지국' 이라는 이름을 무색케 하였다.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데, 5살 때부터 온갖 잡병·난치병에 걸리고 목, , 귀 전부 수술, 한창 좋은 나이인 대학생 때는 폐결핵의 발병과 재발, 50세가 넘어 한국토지공사 퇴직 후에는 대장암의 수술과 9년에 걸친 투병생활까지 해야 했던 그는 개인 한사람이 평생 한 가지 날도 만들기 힘든데, 어버이날과 노인의 날 등 두 가지 날을 제정되게 한 씨앗을 주었다. 16살 고등학생이 아버지날을, 21살 대학생이 노인의 날을 만들자고 주창하고, 24살 때는 서울 신촌에서 훗날 국가에서 이 노인의 날을 제정하게 하기 위해 처음으로 노인의 날 행사까지 직접 거행하였다. 그 청년은 이제 흐르는 세월과 함께 회갑을 훨씬 넘었다. 50년 가까이 오직 한길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외치고 실천한 선구자를 만나 보았다.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듯이 젊은이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인은 절대로 젊은 당신과 무관한 분이 아니다. 바로 당신이 훗날의 노인이다!”

 

아버지날을 고등학생 때 만들고 신문광고를 하셨다고?

 

19632학년 초에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58일이 어머니날인데, 가정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아버지들도 자녀들로부터 당당하게 사랑의 카네이션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선린상고 2학년 학생인 제가 1,252명에게, 아버지날에 대한 생각과 이를 언제로 하면 좋을지를 함께 물었습니다. 조사결과 여자는 대개 봄을 좋아한다하여 어머니날이 5월에 있지만, 남자는 가을을 좋아한다하여 10월을 가장 선호했고 날짜도 어머니날과 같은 8일이 좋을 것 같아 108일을 아버지날로 만든 것이었지요.

 

 

어버이날’,‘노인의 날만든 1등 공신

 

 

이렇게 해서 아버지날을 만든 후에 여러 신문사와 방송국 잡지사를 찾아가 보도해 주십사는 협조를 구했지만, 고등학생이 만든 것이라고 장난 정도로만 생각하고 어느 곳 하나 잘 호응해주질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독자투고도 많이 했지만 성과가 거의 없어서, 1967년부터는 당시 우리나라의 4대 일간지라 생각되던 동아·조선·중앙·한국일보사 등을 찾아가 조그맣게 광고를 했습니다. 동국대학교 학생이던 당시에,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광고하기엔 신문광고비가 너무 비싸서 아주 조그맣게 광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8년에는 앓던 결핵의 재발로 아르바이트도 줄어 주간한국·주간중앙·소년세계 등 유명일간지보다 광고비가 훨씬 저렴한 몇몇 신문과 잡지 등에 광고하면서 이화여대 신문인 이대학보(梨大學報)에 까지 아버지날을 광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대학보에 광고를 한 것이 어버이날을 만든 단초가 되었나?

 

, 그런 셈이죠. 아들보다는 딸이 아버지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제일 많은 딸들이 다니는 이화여대에 아버지날 광고를 하게 된 것이지요. 제가 이대학보에 아버지날 광고를 한지 3년만인 1971년에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처음으로 '이화의 아버지날' 행사를 하였지요. 자기네 학교신문인 이대학보에서 그 광고를 1학년 학생들이 기억하면서 4학년이된 후 학과장 교수님의 승낙을 받아서, 이화여대 교정에서 '이화의 아버지날'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제가 1968520일자 이대학보에 아버지날 광고한지 무려 40년이 되는 2008년에, 역시 이화여대 신문의 하나인 영어신문 <Ehwa Voice : 이화 보이스> 기자들이  5월이 되자 우리나라 어버이날의 유래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자료를 찾다 보니 이화의 아버지날이 우리나라 어버이날의 계기의 하나가 되었는데이화의 아버지날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바로 동국대 학생이던 저의 이대학보에 실린 아버지날 광고였음을 알게 된 후 <이화 보이스>의 두 명의 기자(강성혜ㆍ차자혜)가 저를 찾아와 인터뷰한 후 <이화 보이스> 5월호에 인터뷰 기사가 나갔지요.

 

아버지날을 만들게 된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정은?

 

5학년 때 저를 서울서 공부시키려 이사를 했어요. 병약하시던 어머니는 제가 6학년이 되자마자 더욱 편찮아지셔서 시골 외갓댁으로 가시고, 아버지는 부산에서 근무를 하시게 되어 할 수 없이 월세든 집 문칸 방에서 저 혼자 밥을 해먹으면서 학교를다녔지요.

 

지금처럼 전기밥솥에 코드를 꼽고 쉽게 밥을 하던 시절이 아닌 50여 년 전이라, 남자 초등학생이 조리질을 할 줄 몰라 신문지에 쌀을 쏟은 후 돌과 뉘를 하나하나 골라가며 밥을 했고요. 서울 출장오신 어느 날분명히 돌과 뉘를 하나하나 골라가며 밥을 지었는데, 아버지가 ''하는 소리와 함께 움찔 하시는 겁니다. 돌을 씹으신 게지요. 그런데 그걸 그냥 삼키십니다.

 

어린 제가 미안해 할까봐 씹으신 돌을 '꿀꺽' 삼키셨어요. 돌을 씹으신 것도 미안한데, 삼키시니 더욱 미안함과 동시에 말할 수 없는부정(父情)느꼈습니다.

 

한번은 혼자서 풍로에 숱불을 피워 냄비에 밥을 짓다가, 많은 숙제하느라 밥 올려놓은 것을 깜빡 잊어 먹고 밥을 거의 절반을 태운 후 "배가 고파서 먼저먹었어요." 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아버지는 "잘 했다." 하시며 한 숟가락을 뜨시고 "사실은 나도 먹었다." 하시며 상을 물려주셨고요. 그러나 저는 알지요. 밥이 타서 제가 먹을 것이 없자 안 먹었으면서 먹었다 한 것을 눈치채시고 상을 물려주셨음을! 집안에 떠도는 불탄 냄새와 탄 밥이 섞인 밥을 다 고르지 못하고 드렸는데 왜 눈치 못 채시겠어요.

 

어린 마음에도 이런 아버지 사랑에 감사할 따름이지요사실 밥을 태운 후 못 먹게 된 저녁밥보다 새카맣게 탄 냄비 닦을 걱정과 보고 싶은 엄마 생각에 아버지 오실 때까지 한참을 울고 있었지요.

 

밤에 잠을 잘 때도, 편찮으셔서 외갓집 가서 계신 엄마 생각이 나 꿈결에 엄마를 부르며 손을 뻗어 부드러운 엄마 품을 더듬었어요. 손에 잡히는 것은 물론 딱딱한 아버지의 품이었지요. 아버지가 아실까봐 겁이나 잠이 확 깨며 큰일 났다 걱정하며 허둥지둥 손을 빼는데, 아버지께서 되레 두 팔로 꼬옥 안아주시고  수염 따가운 턱으로  얼굴을 부벼주셨어. 이런 부정이 세상에 또 어디 있습니까? 어릴 적에 아버지의 그러한 부정을 절대 잊지 못하지요.

 

노인의 날을 만든 계기는 무엇인지?

 

1968, 대학교 4학년 때 일입니다. 75세 시라는 할아버지께서 대문을 두드렸습니다구걸을 하시는데 양복에 구두 차림이더군요. 이상하여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들은 외국 유학 다녀온 박사이고 며느리는 방송국에도 자주 나오는 사람이랍니다. 그런 자식들이 소홀히 돌보아 구걸을 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일도있었습니다. 50대 딸이 80세가 넘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겠다고 하셨어요. 아무리 효친경로사상이 희박해가기로서니 부모자식 간에 이래서 되겠는가 싶어 많은 노인정과 경로당을 찾아다니면서 노인들의 실태를 알게 된 후 노인복지를 생각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노인의 날을 국가에서 제정하였으면 하고 대학생 때 노인의 날을 만들었지요.

 

노인의 날 행사를  직접 주관하셨다고?

 

21세 대학생 때 노인의 날을 만들고 , 40년 전인 197148일에 직접 노인의 날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서울 신촌의 한 예식장을 빌려 450 여분의 노인을 초대하고, 장수상도 드리고 기념품을 제공하고 국악인의 노래와 춤을 곁들인 행사를 했지요.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의 날을 만들자고 외쳐도 다들 시큰둥해서, 국가에서 제정되도록 여론을 조성시키려면 실제적인 시범 행사도 필요하다 생각되어, 세계 최초의 <노인의 날 제정 취지문>발표하였습니다. 제가 당시 살고 있던 곳이 서울 마포였습니다. 그래서 지역기관장인 마포구청장, 마포경찰서장,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물론,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부산시장·서울시장을 지낸 전 김현옥시장님도 참석하시어, 식순에 따라 85세 이상 노인분들께 장수상을 시상하고, 치사와 축사를 해 주었지요.

 

국가에서 제정된 정식 기념일도 아닌데, 바쁘디 바쁜 이런 기관장분들을 내빈으로 초대하기가 참으로 힘들었지만, 저에게는 큰 모험이자 도전이요 영광이었습니다. 개인이나 단체가 노인들을 위해 하는 경로잔치가 아니라, 노인의 날을 만든 이로서, 언젠가 훗날 국가에서 이 노인의 날이 제정되게 하기 위해 3년동안 행사비를 준비한 시범적인 노인의 날 행사였습니다.

 

노인의 날 행사 준비로 힘들기도 하셨겠지만, 행사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나?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대학 친구들이 바둑 두러 가자거나 영화 보러가자 해도, 어디를 가자 해도 차마 그럴 수 없었지요. 대학생활의 낭만이란 것을 포기하고 주중에는 학생들 과외를 하고, 주말에는 광화문에서 신문을 팔았지요. 신문도 새벽에 집집마다 돌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말에만 신문을 팔다보니 가판대 허가를 얻을 수 없었고. 신문이나 주간지를 보자기 위에 올려놓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팔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팔면 건강음료 몇 병 살 돈이 나왔지요. 혹 눈이나 비가 오면 반품이 안 되는 신문을 팔지도 못하고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젖은 신문을 들고 명동 대성당을 찾아가, 노인의 날이 국가에서 제정되기를 두손모으고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을 아르바이트 해 모아도 모자란 행사비용은 염치없게도 아버지를 졸라 살던 방 한 칸을 전세 놓아 그 전세보증금을 보태어 겨우 마련했습니다.

 

젊은 사람이 노인의 날을 만들자고 하니, 주위에서 어떻게 생각하셨나?

 

제가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인의 날을 만들려하자, 주위에서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고요. 젊은 사람이 아버지날에 이어 노인의 날까지 만들려고하자, 저 자신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일에 매달리니 의아해 했지요.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선거라도 나가려고 하느냐, 우리 노인들을 핑계로 사회에 손 벌리는 돈벌이 수단으로 노인의 날 만드는 것 아니냐, 장가도 안간 젊은 청년이 노인에 관해 알면 얼마나 아느냐, 심지어 저보다 늦게 같은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한 나이 많은 인사나 교수들도 저를 곱게 보지 않았어요. 대학교의 교수나 강사도 아닌 사람이 1972년에 한국노인문제연구소와 1976년에 한국 노인학회를 만들고, 직장마저 노인문제와 관계없는 감정평가사 업무와 한국토지공사에 근무하고 있었으니, 노인문제전문가로 인정하기 싫었겠지요. 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에는 노인문제연구의 불모지인 당시이니, 한국노인문제연구소이니, 한국노인학회이니 하는 것도 제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라학위가 없을 수밖에 없지요.

 

또 한 가지 노인의 날을 만들고자 신문사나 방송국에 관련 자료를 들고 수도 없이 찾아갔지만 잡상인으로 보였는지 경비실에서부터 쫓겨났습니다쫓겨나면 쫓겨나는 대로 다시 찾아가고 편지를 계속 쓰고 호소한 노력을 10년 이상 계속하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어느 날인가부터 쫓겨났던 곳에서 초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쌓여 현재는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 또는 인터뷰가 250, 방송출연이 400회를 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노인의 날도 국가에서 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선생(저의 모교인 선린상고 선배님)은 어린이날을 만들었지만, 어린이날이 국가에서 제정되는 것은 못보고 작고하셨습니다. 저는 살아서 어버이날과 노인의 날이 국가에서 제정되는 것을 보았으니, 이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건강은 어떠하셨는지?

 

아버지는 젊으실 때는 비교적 건강하셨지만 69세부터 위암수술과 투병, 수술도 할 수 없는 부위에 발생한 폐암과 그 후유증으로 12년 동안 서울아산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투병하느라 고생하셨으며, 그런 중에도 혼자 힘으로는 거동이 전연 불가능하고 대소변도 치루지 못하여 요양원에 가신 어머니를 위해 남편으로서 말동무라도 하기 위해 같이 계시면서 애쓰시다가 갑자기 극심한 폐렴과 패혈증까지 발생하여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술과 고단위 항생제투여 등 각종 치료도 소용없이 한 달 가까이 무의식 상태로 고생만 하시다 2005년에 82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병약하셨는데 , 역시 69세 때부터는 심한 노인성 우울증과 조울증이 반복되고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셨으며, 1998년부터 뇌병변 장애 1급으로 거동도 못하시고 요양원에 계시다가 5년 전부터는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영양사가 상주해서 돌봐주는 노인전문너싱홈에서 지내시고 계십니다. 1998년부터 13년이 되는 지금까지 3~4 개월마다 한보따리 되는 약을 서울아산병원에서 처방받아 갖다드리고 있으며, 그것이 아니라도 한 달에 한 두 번씩 아내와 함께 찾아뵙고 있습니다만, 무녀독남 아들과 며느리로서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없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50년 가까이 탐구해 왔으며,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제가 생각한 방향과 괴리되는 점도 상당하지만, 일찍부터 효도란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들께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 이상의 패배는 없지만, 이미 회갑을 훨씬 넘긴 제가 계속 효친경로사상을 말하면, 세월의 변화를 도무지 모르는 고집쟁이, 허리 찔러서 하기 싫은 절 억지로 받으려는 기성세대 밖에 안 될 것이지요. 평생을 여러 가지 난치병을 가지고 살다보니, 기본체력도 한 해 한 해 쇠약해지고 있어요. 나이에 장사 없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지요.그래서 이제는 이런 일에 뜻을 둔 젊은이나 후학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벌써 내년 어버이날은 제 40회 어버이날, 올해 노인의 날은 제 15회 노인의날입니다. 제가 언제 생을 마감할지는 모르지만 죽기 전에 한번, 국가와 지자체에서 많은 예산으로 행해지는 이 행사에, 내빈석에서가 아니라, 행사장에 참석하는 말석에라도 초대받아 참석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몸이 많이 아플 때면 들기도 합니다. 제가 방정환 선생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방정환 선생도 살아 계시다면 어린이날 행사에 한번 쯤 말석에라도 참석하고 싶지 않으실까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노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는 인간은 질병이나 각종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지 않는 한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역사 수백만년인데, 수명 길어도 120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아침에 태어나서 다음 날 아침이면 죽는 하루살이보다 겨우 120년을 더 살 뿐입니다.시어머니 싫어하는 며느리가 30~40년 후엔 바로 자기가 시어머니나 장모가 되고 40~50년 후면 노인이 됩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효친(孝親)과 경로(敬老)의 문제는 자기 아닌 남의 문제 같지만, 바로 자기의 문제요 우리 인간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효도 공경하고 어른을 잘 모시는 풍토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만들 때부터의 꿈이지만 , 어버이날이나 노인의 날이 그 날에 참석하는 자들의 행사로만 그치지 말고, 날이 제정된 취지가 무엇인지를 알고, 효 실천하는 공휴일로 되었으면 좋겠군요. 특히 올해의 꿈은, 우리나라의 모든 국회의원 약 300명이 영화 '울지마 톤즈’ DVD 를 꼭 보셨으면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하시다가 작년에 대장암으로48세로 선종하신 의사이자 신부요, 선생님이셨던 이태석 신부님이 주인공인 이 영화를 명실공히 국민과 지역주민의 대표자요 한분 한분이 입법기관인 모든 국회의원들께서 이 영화를 보시면 우리나라의 입법수준과 정치수준이 한층 올라갈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국내외의 감동 깊고 훌륭한 영화를 많이 보아 왔지만, 제가 이 영화 DVD 300셋트를 구입해서라도, 우리나라 모든 국회의원들께서 보셨으면 하는 영화는 이 영화뿐임을 고백합니다. 영화가 자체가 좋아서이지 제작자와는 전연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효친경로사상을 부활하자는 전도사로서 효에 대하여 한마디?

 

까마귀도 늙은 자기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준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부화기에서 태어나는 병아리나 오리 메추리가 등은 자기 부모를 몰라서 그렇지만, 엄연히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있고 길러준 부모가 있고, 하느님께로부터 소중한 영혼과  귀한 양심을 받아서 태어나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왜, 자녀를 버리고 부모를 버립니까? 자식이 가족이듯 부모도 가족이어야 합니다. 친부모. 시부모, 장인장모를 너무 구별하여 대우하지 맙시다. 친부모, 시부모, 장인장모는 모두 나를 낳으신 부모,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 내가 가장 보살펴 드려야 할 부모’ 일 뿐입니다.

 

자식과 부모와 배우자는 모두가 가족으로서 보호의 대상이지,결코 버릴 대상이 아닙니다. 왜 사람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될 일마저 팽개치고 양심 없이 살아가려 합니까? 그것이 흔히 내세우는 가난만의 탓입니까성격차이 탓입니까? 자식이 불구인 탓입니까? 부모가 늙고 병든 탓입니까?이웃도 사랑하라 했습니다. 자식이나 부모, 시부모, 장인장모님이 이웃만도 못한 존재입니까? 자식이, 부모가, 시부모가, 장인장모가, 갖은 정성 다해 기르고 뽀뽀하는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만도 못한 존재입니까?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래서는 안되지요. 사람 팔자가 개 팔자만도 못해서는 안되지요. 반려동물보다는 자식과 부모, 시부모 처부모인 사람을 더 사랑하세요.

 

왠지 부모님 싫을 때, 시부모님 처부모님 모시기 싫을 때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어머니 마음>노래를 3절까지 부르십시오. 기도하듯 성가, 찬송가, 찬불가 부르듯 이 노래를 부르십시오. 자기 한 몸 천당·극락 가기 위해 성당·교회·사찰 찾는다면 구태여 그곳 찾지 않아도 확실히 갈 것이며, 아무리 흉악한 인간 말종이라도 선한 인간으로 변모될 것입니다.

 

어버이날과 노인의 날 제정은 언제?

 

어버이날은 1956년부터 1972년까지 16년 동안 어머니날이던 것이 1973년부터 제 1회 어버이날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보다 10년 전인 1963년에 제가 처음으로 한국의 아버지날을 만들었고, 이화여대가 만든 아버지날은 그 8년 후인 1971년에 만들었으며, 이화여대에서 아버지날을 만들고 행사한지 2년 후인 1973년부터 58일 어머니날이 아버지날과 합쳐진 어버이날로 변경 제정되었습니다.

 

노인의 날은 1968년에 제가 처음 만들고 3년 후인 1971년에 만든 제가 시범으로 서울 신촌에서 행사를 한 바 있고, 1997년에야  제정되었습니다. 제가 노인의 날을 만든 지 29년 만에 국가에서 제정되는 결실을 보았습니다.UN 에서도 노인문제가 세계적으로 심각해진 것을 인정하고, 대한민국 청년인 제가 노인의 날을 만든 지 23년이 지난 1991년에야 <제 1회 세계노인의 날>을 제정하고, 각 UN 회원국에도 노인의 날을 제정토록 권장하였습니다우리나라에서 제가 노인의 날을 만든 지 29년 만에, UN에서 UN 회원국에 노인의 날을 제정토록 권장한지 6년만에 제정된 것입니다.

 

하나 더 밝히는 것은, 199212월에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인 199311일 당선자 시절에 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노인신문인 <노인신문>(현재 <대한노인신문>) 에서  노인의 날 제정은 새 정부의 과제란 신년사(新年辭)를 썼습니다. 이는 바로 그 신문의 그 날짜 신문에서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의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란 제하에, <근하 신년인사>가 크게 광고로 게재됨을 정홍순 발행인이 알려주면서, 위 제목의 신년사를 쓰게 해 준 바 있음을 증언합니다. 그 김영삼 대통령께서 임기중인 1997년에 노인의 날을 제정하였으니. 이러한  일들도 우리나라에 노인의 날이 제정되는 과정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취재/ 조영관 편집위원(시인· 경영학 박사)

하이 서울뉴스(2011.7.12), 참좋은이들 21(2011년 9월호) 등

 

10년전 이  인터뷰 이후 : 조영관 발행인은 사단법인 도전한국인본부를 창설하였으며, 2013년에 도전인을 위한 칠전팔기 7월8일 도전의 날, 이돈희 대표는 이 지구상의 모든 어버이를 위한 10월8일 세계어버이날을 만들고, 맨티와 멘토로서, 도전의 아이콘으로서, 밝은 세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도전한국인본부(상임대표: 조영관,  총재: 이돈희)의 사업 내용으로는

1) 도전정신으로 공익적 성과를 이루어낸 실버세대 인물 발굴과 기록인증

2)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나눔ㆍ봉사 등 재능기부 활동

3)실버세대의 4차사업 도전을 후원하는 교육, 홍보활동

4) 기타 본회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입니다. 

※ 도전한국인본부 사단법인 설립 허가 : 서울특별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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